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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의 인간 Human In Between>전 2부

2016-7-06

<사이의 인간 Human In Between>전 2부

 

일시 : 2016. 06. 22 ~ 07. 18

장소 : 4LOG Art Space

 

[2부 참여작가] 

Slack Line  전 .  2016.07.06 ~ 07.18

 

고정균  김세윤  김용수  김은별  노혜원  박채린

신유진  신지윤  윤상아  이민경  한치인  홍소영

 

 

 

[고정균 작가]

 -Flattened scenes

 #1 드림빌 A동 207호

생산기술과 정보통신의 발달에 의한 생산과 소비의 빠른 회전율은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물리적 공간과 경험적 공간이라는 서로 다른 두 성분을 점차 격리시킨다.

 

‘드림빌 A동 207호’라는 주소의 물리적 공간과는 다르게 ‘나의 방’이라는 개념상의 공간은 경험에 의해 구축된 이미지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계약기간이 짧은 월셋방에 살며 건물자체에 손상을 가할 권한까지는 얻지 못한다.

미처 정착할 틈 없이 회전하는 입주주기는 경험적 공간과 물리적 공간의 관계를 느슨하게 하고 유기적 결속을 잃은 거주자들은 언제든지 그 장소를 벗어날 준비가 되어있다.

 

오는 8월 1년짜리 월세 계약이 끝나고 나면 정릉3동 드림빌 A동 207호는 더 이상 내방이 아니게 된다. 짧아진 계약의 단위, 쉽고 빠른 이사, 옮기기 쉬운 물건들, 이사를 염두하며 간편해지고 단순해지는 이 경험적 공간은 이젠 너무나 납작해지고 가벼워져서 쉽게 떨어지고 다른 곳에 쉽게 붙는다.

 

 

    

 

[김세윤 작가]

-심방(신방) 神房

‘무당’이라 부르는 육지에 비해, 제주는 무속인에게 ‘심방’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심방은 신의 형방(形房)으로, 풀이하자면 ‘자신을 방 삼아 그 안에 신을 들이는 자’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제주의 심방은 내륙의 무당처럼 직접 신에 빙의(憑依) 하여 전달하는 것과는 달리, 신을 곁에 두어 그의 말을 듣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심방에겐 자신의 의지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심방은 신과 대립하기도 한다. 영등굿의 마지막 입무 부분인 영등할망이 들어설 때, 심방은 할망을 노려보며 할망의 상징인 ‘요왕사자기’를 치켜 세운다. 자신의 방(房)을 비울 수는 있지만, 그것은 오직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을 표명하기라도 하듯이 기 싸움을 한다. 심방과 신이 대립하고있을 때, 이 굿의 의뢰자인 해녀들은 신께 한 해의 풍어를 빌고, 가족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같은 굿판에서 신과 심방, 그리고 사람, 그 사이엔 미묘한 경계가 있다. 풍신(風神)인 영등할망의 모습을 제주의 영험하고도 맑은 바람으로 대신하여 보았다. 심방이 가무를 통해 신을 돌려보내는 모습도 보았다. 그리고 내 옆에서 간절하게 빌던 해녀의 기도소리도 들었다.
그들 사이에 놓여있는 ‘틈’에 대해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나의 의지를 갖고 이를 표현하고 싶었다.

 

 

[김용수 작가]

• 우리는 각자의 믿음 속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믿음은 때론 현실보다 강한 힘을 발휘한다.
• 서로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는 나의 믿음을 통해 추측할 수밖에 없다.
• 때문에 요소간에는 틈이 있다. 이 틈은 세상을 바라보는 각자의 믿음의 틀이며, 간극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나누고 경계 짓는 것은 인간 활동의 한 축이다.
• 경계 짓기는 하나의 틀로 작용한다. 이 틀이 굳어서 견고해지면 그 위에 새로운 틀이 생기며 문명은 발전해왔다.
• 이전의 틀은 새로운 틀에 영향을 주며, 그 한계를 정한다. 그렇다면 경계가 쌓이는 과정은 자유가 줄어드는 과정인 것인가?
• 자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새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 과거의 행동은 현재를 제한하고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 이미 지난 일은 이런 인과관계의 단단한 대지 위에 있다.
• 그렇다면 현재를 통해서 미래를 예상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 예언과 예측은 항상 도전 받는다. 냉혹한 위협 속에서도 계속된다.

 

 

 

 

[김은별 작가]

-LIMITED GROUND
원본(origin)에 대한 소유욕은 시대를 불문하고 있어왔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여러 가지 물리적인 이유로 모두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에 따라 원본을 간접적으로 소유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결국 찾아낸 방식은 그것의 원본이 아닌 원본의 복제품을 소비의 방법으로 갖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이미지들은 원본을 제외한 대량 복제된 이미지이다. 복제된 이미지를 소유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그저 마음에 드는 페이지를 잘라 갖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내가 욕망하는 것들은 그것의 복제된 이미지를 통해서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지의 소유에 대한 궁극적인 나의 목적은 독점 이다. 복제된 이미지들은 개인이 소유하고 있을지라도 원본에 대응하는 의미 이외의 개인의 소유에 대한 이유까지는 지니지 못한다.
나는 복제된 이미지의 원본 각각의 독자성을 유지하며 소유에 대한 독점을 위해 복제된 이미지들을 바탕으로 원본 이상의 독점적인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려 한다.

 

 

 

[노혜원 작가]

-aSSEMble

 인간은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 함께 세계 속에 실존한다. 그 안에서 그는 죽음이라는 제약을 가지지만 미래로 자신의 존재가능성을 기획투사하여 현재를살아간다. 그러한 가능성 아래에서 과거 현사실적으로 존재해왔음을 자신의 것으로 떠맡아서 새롭게 반복해 재해석하며 과거를 다시 잡을 수 있다.
이렇듯 존재는 시간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시간 속에서’일어나는 존재의 사건에 참여하여 거기서 존재의 부름에 자기 나름대로 응답할 뿐이다. 이러한 참여 속에 내 존재에 있음의 확실성을 가하는 행위는 현재에 겪는 그 상황에 대해 더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에 있는 순간들을 통해 내가 존재해왔음을 확인하고 안도감을 느낀다.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육체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모아놓은 기억의 반복을 통해 사그러든다.
어쩌면 이런 과거에 대한 기억반복은 나의 불안을 없애기 위한 장치로써 무수히 반복되면서 무의식적으로 이상화된 틀 속에 가둬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안에는 좋았던 기억과 나빴던 기억이 혼돈된다. ‘좋았다, 나는 거기 존재했다’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 현재 나의 존재에 대한 자기암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을 그만두지 못한다.
이런 기억 속에 존재하는 특정 장소는 현재에서 과거로 다가가 그 순간 속 기억들을 되새기게 되면서 그 반복행위를 증폭시키는 매개체가 된다. 긍정적 기억 안에 원래 그곳이 존재했을까.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불안감을 지우기위해 그 안에 끼워버린 것인지 아이러니함을 느끼지만, 무수히 반복행위를 거치면서 그 곳에서 내가 존재했다는 안도감만이 짙게 남게 된다.그래서 이상화된 기억 속에 속해 안도감을 주는 장소에서 행해지는 그 반복행위를 가시화하여 모아놓은 것들을 펼쳐놓는다. 모여진 기억들은 다시 조립되어 기억 속에 가둬진다. 다시 조립된 기억을 나 자신이 되새기면서 내 존재가 거기 있었음을 확인한다.

 

 

[박채린 작가]

 비물질적인 것에서 결핍을 느낄때 우리는 그를 채우고 싶어한다.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그에 대한 규정이 필요하다. 어떤 것에 대한 결핍인지를 인지한 후 이성적 판단을 거쳐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척도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결핍은 비가시적이고 형태가 없기 때문에 가변적인 성질을 지닌다. 그러므로 척도는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이때 새로운 결핍이 떠오르면서 이를 규정짓기 위해 이 전의 추구는 유보된다.

 

판단 전 날것의 결핍은 그들의 움직임을 유연하게 퍼트려 나간다. 움직임은 나를 애워싸고 그들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한다. 처음의 추구는 유예되고 무너진다.

 

망설임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 추구를 행하는 과정 속에 위치한다.

 

 

 

[신유진 작가]

-Entry Door

 몰래 만들어진 작은 문은 꿈꿀 수 있는 곳,

나의 비밀 스러운 헤테로토피아(Heterotopoa)로 통하는 'entry door' 이다.

그 안에서 '나'는 여러 단편을 포착하고, 어떤 풍경을 기억에서 떠올리거나 상상한다. 기억과 매개체를 통해서 다가오는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며, 순간적이거나 지속적인 내면의 변화에 집중한다. 

그리고 반복적인 이야기를 생성하여 내면이 변화하는 찰나를 채집한다. 다른 여러 성질이 공존하는 작은 파편들은 재현되고 표현되는 동시에 수집되며, 나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oa)'를 만들어 나간다.

 

 

 

[신지윤 작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경험을 한다. 경험은 내 안에 있는 공간 속으로 들어오고 대부분의 요소들은 바닥으로 가라앉지만 일부는 어떤 형태를 가지고 공간 속에 자리 잡는다. 그들은 점차 큰 틀을 형성해가며 골격을 이룬다.
형상들은 내게 다가오기도 하고 그들끼리 섞이고 뭉개지기도 한다.
위 행위는 요소들을 증식시킨다. 동시에 그들은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라진다 해도 흔적은 남아있고 그 흔적들은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한다.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들은 계속해서 변이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경험의 실체는 점차 옅어진다.
결국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처음과는 다른 공간이 형성된다. 쌓이고 지워져 가는 과정이 진행될수록 공간은 구체화된다.

 

 

 

[이민경 작가]

• 눈을 감았을 때 느끼는 촉각
• 시각적 기억을 제외한 접촉에 대한 촉각적기억을 시각화

 

 

[한치인 작가]

-정원(庭園) 사(師)

 정원은 누군가의 즐거움, 기쁨을 둘러싸는 곳이자 한정된 공간을 자신의 영역으로 길들이려는 인간 본연의 속성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정원사가 정원을 관리하고 조작하는 일은 스스로를 다른 대상과 분리시키며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러한 분리의 과정 속에서 선별되어 구성된 것이, 창조적 여가의 산물인 것이다.
이러한 열락의 동산 안에는 길들여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존재한다. 틀 밖의 세상은 두렵고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인 반면 틀 안은 외부위협으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는 곳이다. 틀 안의 식물들은 통제와 감시를 당하면서 이리저리 떠돌고 있다.
정원사는 이 두 세계를 조화시키는 이로서 기쁨의 울타리를 견고히 하면서도 그 안에서 또 다른 즐거움이 틀을 구축해 가는 과정을 만들어 간다.
창조적 여가의 산물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거나, 혹은 그러한 욕망을 거부 한다고 할 때, 정원사는 이 둘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경계하고 서로를 인정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인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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